[스페인] 세비야, 땅을 향한 플라멩고..
플라멩고와 발레를 비교해보면 플라멩고의 매력을 쪼끔 더 알 수 있다. 발레는 한마디로 상승지향적! 하늘을 나는 림프를 동경해 하늘로 방~방~뛰고 무중력상태를 꿈꾼다. 반대로 플라멩고는 쾅!쾅! 거리며 온 몸의 에너지를 땅으로 쏟아 붓는다. 집시의 삶에서 시작한 이 춤은 가식이 없어 그래서 열정적이다.
오후 내내 세비야를 돌아 다니다 저녁 10시 반 공연에 완전 뛰어서 가까스로 도착. 나는 티켓을 끊고 들어가는 건 줄 알고 학생할인 되냐니까 그냥 막 앉으란다. 앉아! 앉아! 저기! 앉아! 이런식... 맨 앞쪽 벽에 붙어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으로 돌아가는 따블리오다 보니 스페인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었고 관광 온 노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리가 좀 차자 웨이터가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았다. 나는 샹그리아 한잔을 시켰음.. 나중에 공연값+음료 해서 30유로 나왔는데, 학생할인 받아서 27유로 냈다. 풍채 좋은 아저씨와 보조로 보이는 젊은 청년 한명(깐떼오르) 그리고 기타를 치는 사람..이렇게 셋이서 무대로 올라갔다. 엄청난 성량으로 우워워워워~ 하며 드디어 플라멩고 공연 시작!
기타와 깐떼오르의 노래&코플라(우리나라로 치면 창과 비슷한 설을 풀어내는 형식이었음), 그리고 손바닥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만들어내는 리듬 이 세가지와 댄서의 춤이 어우러진 것이 '플라멩고'이다. 이 밖에도 다른 형식들이 있으나 이것이 기본 골격인듯 하다.
중간 중간 Ole!(얼쑤나 잘한다! 쯤으로 해석..) 를 외치는 부분이 있으나 혼자라서 뭐 크게 외치지도 못했고 다른 관광객들도 플라멩고가 처음이니 어디서 뭘 외쳐야 하나..모르는 눈치 긁적긁적-_-a. 댄서들은 총 6명이 나왔는데 처음엔 젊은 여자, 그다음엔 중년, 마지막엔 50대가 넘어보이는 여자 댄서도 나왔다. 댄서들은 바짝 고정한 머리핀이 다 빠질정도로 온 몸을 흔들었다. 탄탄한 등근육과 어깨선부터 손가락 끝까지 무언가, 춤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뒷 굽이 닳아진 구두를 보니 그 만큼 연습의 세월도 느껴졌다. 마치 동물처럼 온 몸을 실어 엄청난 속도로 발을 구르는 동작(Zapateado라고 함)에서는 진짜 소름이 끼쳤다..무섭고도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춤꾼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춤에 빠져드는 신비한 지점을 '듀엔데'라고 하는데, 이 날 몇 명의 춤꾼이 그 지점을 느꼈을까?
6명의 댄서 중에는 2명의 남자 댄서가 있었는데, 나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슬퍼보이는 여성의 것 보다는 남성들의 플라멩고가 더 마음에 들었다. 춤에 끼가 좀 있다고 해야하나? 중간 중간 잔 머리가 내려오는 걸 손으로 쓰-윽 쓸어 넘기며 이런 동작을 춤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인상 깊었고 양복 조끼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약간의 요망스런 표정ㅋ도 매우 좋았다. 물론 사파테아도도 남성들의 것이 훨씬 묵직하고 힘이 있었다. 굽과 바닥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엄청 났고..
중간에 기타 솔로로 연주하는 무대도 있었으나, 그닥 흥하진 않았고 역시 즉흥적인 기타 반주와 노래, 춤이 플라멩고였다는..아직도 그 분위기에 취해 들썩 거리며 환미를 머금고 있던 기타 연주자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