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윤종신의 데뷔연도이다. 내가 태어난 해가 1987년이니.. 그는 거의 내 삶만큼 노래를 부른 셈이다...
고작 직장생활 3년차인 나는 벌써 이 일이 지겹고 앞이 깜깜한데 한 가지 일을 수 년동안 해낸다는 것! 그리고 또 잘 해낸다는 것!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
뭐.. 예능에 발을 담그기는 하셨지만 윤종신은 노래하고,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 때 제일 멋있다.
2014년 11월 1일. 날이 흐렸던 대전.
사실 공연이 취소 되었으면 했던 마음이었다.. 공연 전날 신해철님의 발인이 있었고..그 마음으로 공연을 하기 힘들지 않을 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오후 7시 시작 시간을 넘겨서 까지 줄이 길게 있어서 조금 늦게 착석 했다. 김광석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던 것 같다..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윤종신이 등장했다. 첫 곡은 그의 데뷔곡인 '텅빈 거리에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당시 윤종신의 미성 ㅠㅠ 엑스포 이후에 대전에 2번째로 공연한다는 말부터, 데뷔하고 처음 전국 투어 공연을 해서 그동안 팬들한테 너무 미안했다는 말까지..ㅎㅎ 웃으면서 하는 거 보니까 진짜 저 사람 이 바닥 프로는 프로구나 생각들었다. 진짜 마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감정 다스리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힘들어 보였으니..ㅠㅠ
"사람들은 자기의 데뷔 초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때 사랑도 뭣도 뭐르고 부른건데, 그 모습을 좋아하는 거 같다. 그때의 치기어림을 좋아하는 거 같다.. 이제 뭐 알고 부르는건데 제발 좀 좋아해줘요..이제 다 안다니깐?ㅋㅋ" 공감 공감. 나도 데뷔초 노래들이랑 특히 그가 작사한 '스치듯안녕' 이란 곡을 좋아 한다. 아니, 어떻게 스치듯 + 안녕을 조합했을까..이 분 진짜 천재가 아닐까? 스치듯 안녕해요. 한글에서 오는 이 어감과 감성이 정말 소름끼치게 좋다.
히트곡들로 채워진 공연들 중에, 가장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 곡은 '내일 할 일'.
월간 윤종신에서 성시경이 불러서 더 유명해진 이 곡은 원래 윤종신 11집에 있는 본인 곡. 남 시켜서 자기 노래 띄우는 수법을 쓰심ㅋ
멜로디는 겁나 경쾌한데 가사는 내일 할 이별을 차곡차곡 준비하는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의 내용이다.. 담담해서 더 슬프다.
이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눈믈을 보였다. 관객들이 대신 노래를 불러줬다.. "이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해철이 형이..나 정도 짬밥이면 왠만해선 감정 잘 흔들리지 않는데, 중간에 계신 남자관객 한 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엉엉 우시는 모습에 울컥해서.. 내 고음을 못보여 줬다.." 면서 또 유쾌하게 넘어 가려고 하는 저 모습도 참 안쓰러웠다.
월간 윤종신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곡. "말꼬리". 정준일 버전을 참 좋아했는데, 윤종신 버전으로 또 들으니 맛이 달랐다.
가사가 참 좋다. 이 분 정말 이별 전문가 이신듯..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남녀의 이별 장면이 머리 속에 샤샤샥 그려진다. 한 사람은 미친듯이 이성적이고, 차가운 모습으로 끝을 고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대략적인 그림 이랄까.
그리고 10월에 발표되었던 "고요"도 들을 수 있었다. 이것도 이별노래. 이건 진짜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이별 노래다. 이별학이 있다면 윤종신은 노벨상 감이다 진짜..ㅋㅋㅋ
게스트로 정준일이 왔음 싶었는데 본인이 직접 다 부르심 ㅋㅋㅋㅋㅋ그래도 좋았다. 곡이 원체 좋으니..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앵콜을 외쳤다. 그가 다시 나와 10집 수록곡인 몬스터를 열창했다.
힘겹게 이 공연을 버텨준 그에게 오히려 고마웠다. 돈도 돈이지만..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주고 2시간의 공연을 잘 끝내주셔서 말이다.
관객들도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그가 무대에서 사라질 때 까지 "윤종신! 윤종신!"을 외쳤다.
아마, 윤종신을 잘 모르는 대중이라면 그냥 웃긴 예능MC쯤이라고 알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슈스케에 나오는 기획사 사장정도 쯤 (참고로 이날 곽진언 게스트로 나옴. 계탔음ㅋㅋㅋ).
나는 그가 써내려가는 가사의 감성이 참 좋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이별과 사랑을 어떻게 겪어 왔는지.. 솔직하고 소소한 단어들로 다 드러나는게 참 좋다. 곡들이 꼭 하나의 단편영화 같아서 참 좋다. 유독 '너에게 간다'라는 곡을 좋아하는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가사대로 장면들이 촤르르 펼쳐 지면서 감정 이입이 된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노래속 주인공 처럼 카페 문을 같이 열어보는 기분이 든다. 수 백번 들었지만 항상 여운이 남는 곡이다.
윤종신은 이렇게 노래 하나로 사람을 울고 웃게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뮤지션, 적어도 나에겐 거물급 음악인이다.
공연을 보고 나니 그에게서 더욱더 단단함이 느껴졌다. 딸깍발이 노인처럼 음악만은 본인 고집대로 계속 만들어 내셨으면 좋겠다.
일단은 남은 전국투어공연 잘 마무리 하시고, 팬 배려없는 가수에서 벗어나시고 ㅋㅋㅋ 공연도 자주자주 하시길 바란다.
P.S 2014년 11월 1일 공연.. 오른쪽편에는 아예 안오시더라 ㅠㅠ 계속 왼쪽이랑 가운데서만 노래 부르시고..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힘드셨을 텐데 공연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귀호강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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